성경은 내가 들고 온 질문에 답을 주는 설명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 주다가, 어느새 내가 원하던 것 자체를 바꾸어 놓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계획은 무너지고, 말씀으로 빚어진 마음만이 그 자리에 대신 서 있는 것을 알아봅니다.
사무엘하 7:5 —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누가복음 24:27 —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사도행전 16:9 —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다윗은 백향목 궁에 살고 있었습니다. 전쟁은 그쳤고, 나라는 안정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자신은 백향목 집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여전히 휘장 가운데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전을 짓기로 합니다. 이것은 욕심이 아니었습니다. 야망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계획이었고, 선지자 나단조차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합니다.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거절이었습니다. 경건한 사람이 경건한 동기로 세운 경건한 계획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계획이 무너지면 대개 두 가지를 의심합니다. 내 동기가 불순했거나, 내 믿음이 부족했거나. 그런데 다윗의 이야기는 그 두 설명을 다 막아섭니다. 동기도 옳았고 믿음도 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생각이 달랐을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거절만 하고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집을 지어 드리겠다고 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집을 세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 영원히 견고할 왕위를. 계획이 꺾인 자리에 훨씬 큰 약속이 놓였는데, 다윗은 그 순간에는 그것을 구한 적이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그날, 두 사람이 예루살렘을 등지고 엠마오로 걸어갑니다. 그들의 말 속에 이번 묵상의 가장 아픈 문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바랐노라 — 과거형입니다. 소망이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 버린 사람의 말투입니다. 그들의 계획은 무너진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분은 부활하신 몸으로 그들 곁에 계셨습니다. 원하셨다면 그 자리에서 손과 발을 보이시고 모든 것을 단번에 끝내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예수님이 주신 처방은 새로운 계시가 아니라 이미 기록되어 있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없었던 것은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사흘 전에 일어난 일도 다 알고 있었고, 그날 아침 여인들이 전한 빈 무덤 소식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없었던 것은 그 사실들을 꿰어 볼 성경의 눈이었습니다. 말씀이 열리자 비로소 사건이 읽혔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뜨거워진 것은 상황이 바뀌어서가 아닙니다. 상황은 그대로였습니다. 그 상황을 읽는 눈이 바뀐 것입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길에서 아시아로 가려 했습니다. 성령이 막으셨습니다. 방향을 틀어 비두니아로 가려 했습니다.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계획서에 적힌 항목이 하나씩 지워져 갔습니다. 그리고 드로아에 이르렀을 때, 밤에 환상이 보입니다.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그 닫힌 문들이 실은 유럽으로 복음을 옮기는 길이었습니다. 바울은 막히는 동안에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막히는 동안에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성경은 내가 어느 회사에 가야 하는지, 누구와 결혼해야 하는지를 이름까지 적어 알려 주는 설명서가 아닙니다. 그런 용도로 성경을 펴면 실망하거나, 더 나쁘게는 아무 데나 펼쳐서 나온 구절로 인생을 결정하게 됩니다. 성경이 하는 일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무엇을 귀히 여기시고 무엇을 미워하시는지, 그분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계속해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 일이 오래 쌓이면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내가 원하는 것 자체가 바뀝니다. 그래서 어떤 문이 닫힐 때, 말씀으로 빚어진 사람은 그것을 실패로만 읽지 않습니다. 다윗처럼 거절 안에서 더 큰 약속을 알아보고, 두 제자처럼 죽은 소망의 자리에서 살아 계신 분을 알아봅니다. 성경을 읽어야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답이 적혀 있어서가 아니라, 답을 알아볼 눈이 거기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께 구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니면 이미 정해 놓은 내 계획에 대한 승인입니까?
기도하며 세웠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계획이 있습니까? 그 자리에 하나님이 대신 두신 것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보입니까?
이번 한 주, 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기 위해 성경을 펴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시겠습니까?
주님, 우리는 뜻을 구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이미 정해 놓은 길에 도장을 받으러 나아갔음을 고백합니다. 계획이 무너질 때마다 주님을 의심했고, 문이 닫힐 때마다 버려졌다고 여겼습니다. 다윗에게 거절 뒤에 약속을 주신 주님, 엠마오 길의 두 제자에게 성경을 풀어 주신 주님, 바울의 막힌 길을 유럽으로 여신 주님. 우리에게도 말씀을 열어 주옵소서. 답을 찾으러 성경을 펴는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게 하시고,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거워지게 하옵소서. 길에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